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흥선대원군 이하응필 묵란도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1891년([[고종(대한제국)|고종]] 28년)에 [[흥선대원군]]이 [[강릉 유씨|유씨]] 성을 가진 사람의 부탁으로 그린 그림이다. 흥선대원군은 젊은 시절부터 당숙인 [[김정희|추사 김정희]]에게 글과 그림을 배운 만큼[* 정확히는 법적인 진이당숙(아버지의 이종사촌)이다. 김정희의 양어머니와 흥선대원군의 양할머니가 서로 자매이기 때문에,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법적으로는 당숙 - 조카가 되었다. 그 인연으로 김정희에게 예술을 배웠던 것.],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유명했으며 특히 [[난초|난]]을 잘 그리기로 유명했다. 그래서 흥선대원군의 작품에는 김정희의 영향이 많이 들어있는데, 말년으로 갈 수록 흥선대원군 자신만의 특징을 담아낸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. 이 그림도 그 중 하나이다.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1_2폭.jpg|width=100%]]}}}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3_4폭.jpg|width=100%]]}}}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5_6폭.jpg|width=100%]]}}} || ||<-3> {{{#ffd800 ''' 왼쪽부터 〈1 ~ 2폭〉, 〈3 ~ 4폭〉, 〈5 ~ 6폭〉이다.[* [[https://www.heritage.go.kr/heri/cul/imgHeritage.do?ccimId=1636336&ccbaKdcd=21&ccbaAsno=01420000&ccbaCtcd=11|해당 줄 첫 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.]][br][[https://www.heritage.go.kr/heri/cul/imgHeritage.do?ccimId=1636337&ccbaKdcd=21&ccbaAsno=01420000&ccbaCtcd=11|해당 줄 두 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.]][br][[https://www.heritage.go.kr/heri/cul/imgHeritage.do?ccimId=1636338&ccbaKdcd=21&ccbaAsno=01420000&ccbaCtcd=11|해당 줄 세 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.]]]'''}}} ||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7_8폭.jpg|width=100%]]}}}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9_10폭.jpg|width=100%]]}}} ||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11_12폭.jpg|width=100%]]}}} || ||<-3> {{{#ffd800 ''' 왼쪽부터 〈7 ~ 8폭〉, 〈9 ~ 10폭〉, 〈11 ~ 12폭〉이다.[* [[https://www.heritage.go.kr/heri/cul/imgHeritage.do?ccimId=1636339&ccbaKdcd=21&ccbaAsno=01420000&ccbaCtcd=11|해당 줄 첫 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.]][br][[https://www.heritage.go.kr/heri/cul/imgHeritage.do?ccimId=1636340&ccbaKdcd=21&ccbaAsno=01420000&ccbaCtcd=11|해당 줄 두 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.]][br][[https://www.heritage.go.kr/heri/cul/imgHeritage.do?ccimId=1636341&ccbaKdcd=21&ccbaAsno=01420000&ccbaCtcd=11|해당 줄 세 번째 사진 출처 -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.]]]'''}}} || 가로 길이는 6m 정도이고, 세로 길이는 약 2m 크기이다. 총 12폭인데 2폭 씩 대칭구도를 이루고 있다. 각 폭마다 여러 [[돌|괴석]]과 [[난초]]가 그려져 있으며, 행서로 제목을 써두었다. 제목은 산문 형식이며 내용은 그림을 그린 이유, 병풍 형식이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내역, 이 그림을 보고 감상을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 등이다. 마지막 폭에는 그린 시기와 흥선대원군 부부가 결혼 60주년을 맞았다는 내용을 적었다. 글씨는 힘이 넘치며 자유분방한 것이 특징이다. 그림 속 난초잎은 위로 갈 수록 시원하게 힘껏 뻗쳐지다가 마지막에는 부드럽게 마무리 되었다. 또한 각 진 바위 여러 개가 겹쳐져 있고, 바위의 윗 부분은 넓고 아래로 내려갈 수록 폭이 좁아진다. 이는 동시기의 유명한 서화가 정학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. 각 폭 하단의 바깥쪽 가장자리에는 [[도장]]이 찍혀있는데 다 다른 도장이다. [[분류:조선의 회화]][[분류: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]][[분류:서울역사박물관 소장품]][[분류:흥선대원군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